'카페 시바'에 들어서면 먼저 인도풍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잡아 끕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도 못 가는 요즘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네요. 하지만 메뉴판을 펼쳐보자마자 특유의 '결정 장애'가 엄습해 올 듯. '비건 퓨전 레스토랑'답게 메뉴 구성이 상상 외로 다양합니다. 각종 파스타와 버거에 양념 후라이드와 찜닭, 스튜에 덮밥까지. 도대체 이게 무슨 조합. 아무튼 정신 차리고 양념 후라이드와 시바 버거, 비건새우 오일 파스타를 주문했어요, 물론 음식과 곁들일 내추럴 와인 한 병도 같이.

인공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비건 햄버거

가장 먼저 배도 채울 겸 '시바 버거'부터 한입. 재드래곤 에디터는 나름 비건 버거를 먹어본 편이라고 자부. 초창기 지구용사님들이면 기억하실 수도 있을텐데 각종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대체육 버거를 섭렵했던 적이 있었죠(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닌 수제 비건 버거는 이번이 첫 도전입니다.

시바 버거

시바 버거를 먹고 든 첫 느낌은 '쇠고기 패티가 들어간 버거와 맛의 차이가 전혀 없다'였습니다. 시바 버거의 패티는 콩단백과 여러 콩류, 갖은 야채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대체육 버거에서 강하게 느껴졌던 인공적인 맛과 향이 나지 않아 좋았어요. 사실 프랜차이즈 대체육 버거는 인공적으로 가미한 육향이나 불향이 좀 거슬리기도 했거든요. 시바 버거의 패티만 따로 먹어봐도 콩으로 만들었단 느낌은 전혀 안 들었어요. 크리스피하게 바싹 구워 바삭한 패티의 식감도 좋았고요. 프랜차이즈 대체육 버거 좀 먹어봤다고 비건 버거의 세계를 안다고 착각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맛이었습니다.

살결이 쭉쭉 찢어지는 양념치킨

양념 후라이드(위)와 찜닭(아래)

다음은 정말 궁금한 양념 후라이드로 갑니다.

모양은 딱 봐도 양념치킨. 일단 입에 넣으니 익숙한 양념치킨 소스 맛이 먼저 들어옵니다. 튀김옷은 약간 두꺼운 느낌도.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인 닭고기(?)를 씹으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왜 식물성 재료로 만든 닭고기가 진짜 닭가슴살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느낌이 날까요. 알고 보니 결두부로 만든 닭고기가 비결이었네요. 결두부는 대두에서 추출한 두유를 냉각한 뒤 응고제를 넣고 여러 과정을 거쳐 쭉쭉 찢어지는 결을 형성한 두부라고 하네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결두부로 만든 닭고기만 양념 없이 따로 먹으니 정말 두유나 두부 같은 고소한 콩맛이 나는 듯도 했어요.(아,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미각이란)

이어서 찜닭을 맛볼 차례. 결두부를 사용한 양념 후라이드와 달리 찜닭은 콩단백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익숙한 간장 베이스 양념인데 고기는 좀 물컹한 느낌. 아무래도 결대로 찢어지는 고기 식감의 양념 후라이드가 제 입맛엔 더 나은 듯 싶네요.(극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곤약으로 만든 새우파스타

비건새우 오일 파스타

마지막은 궁금했던 비건새우 오일 파스타. 파스타 위에 정말 새우살처럼 생긴 게 푸짐하게 얹어져 있어요. 새우살은 곤약을 베이스로 만들었다고. 근데 새우보다는 어묵의 맛이 느껴졌고, 식감도 탱탱한 새우살보다는 좀 물렁물렁한 어묵의 느낌. 비건 새우는 진짜 새우의 맛이나 식감을 살리기 보다는 새우 파스타의 비주얼을 완성시켜 주는 재료라는 느낌이 드네요.

점심부터 파스타, 햄버거, 양념치킨, 찜닭이라는 국적 불명의 상차림에 내추럴 와인까지 곁들여 먹으니 세상 행복하네요. 코로나19 거리두기만 완화되면 저녁에 느긋하게 술 한잔 하러 재방문하고 싶은 곳이랄까요. 아무튼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비건 음식의 매력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아요. 비건 음식도 충분히 맛있다는 건 이미 알았고, 무엇보다 고정관념을 비트는 재미가 비건 음식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식물성 재료만 가지고도 세상의 익숙하고 다양한 맛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