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동물을 안락한 환경에서 키우고 인도적 방법으로 도살한다면 육식도 괜찮은 것 아닐까? 소나 돼지 고기는 먹지 않으면서 생선을 먹는 것, 나아가 식물을 먹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닌지? 어차피 도축된 동물이라면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맛있게 먹는 게 나은 것 아닌지. 이런 질문들에 자못 사이다 같은 대답을 해주는 책이 있어요. 바로 오늘 소개할 피터 싱어 교수의 <왜 비건인가?>에요. 비거니즘에 대한 선입견을 시원하게 깨뜨려 주는 그의 글, 지구용 레터와 함께 읽어봐요.
"채식주의자는 기껏해야 딴 세상의 이상주의자이거나 최악의 경우 괴짜라고 생각했다."
프린스턴대 인간가치대학센터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윤리 철학자 피터 싱어 교수. 그가 유명해진 건 1975년 출간한 <동물해방>이라는 책 덕분이에요. 비인도적인 공장식 축산과 동물 실험을 비판하며 동물 해방을 주장한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동물권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어요.
싱어 교수도 원래부터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래요.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채식주의자는 괴짜라고 생각했다고. 그런 그가 동물 해방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옥스포드 철학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채식주의자 친구들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들과 토론하며 윤리 철학으로서의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나는 비거니즘을 종교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건 식단에서 약간 벗어나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 목표는 여전히 처음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때와 같이 소비로써 비윤리적 행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윤리 철학이라고 하니까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싱어 교수의 주장은 단순해요.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이유 없이 고통을 주면 안돼!" 그래서 싱어 교수는 굴이나 홍합 같은 조개류와 방목한 닭이 낳은 알은 드신대요. 무척추 동물로 뇌가 없는 조개류는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판단에서죠. 같은 논리로 채소나 과일도 자유롭게 섭취해요. 완벽한 식단에 연연하다가 제풀에 지치거나 채식의 취지는 잊어가는 일, 있지 않나요? 그보다는 자신만의 논리를 정립하고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책은 귀여운 동물을 위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성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나는 고기를 얻기 위해 말과 개를 도축하는 일에 같은 이유로 돼지를 도축하는 일보다 더 분노하지 않는다.
싱어 교수는 자신이 동물 애호가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요. 차별 받는 인종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게 그들을 귀여워하거나 껴안고 싶어하는 건 아니듯, 동물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모두 동물 애호가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 그간 동물에게 가하는 잔인한 행위를 반대하는 사람을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동물 애호가로 묘사했기 때문에 오히려 진지한 정치 도덕 논의에서 배제돼 왔다는 지적이죠.
"동물해방은 다른 어떤 해방운동보다도 인류에게 강한 이타주의를 요구한다. 인간에게 이토록 진정한 이타주의가 가능할까?"
동물 해방, 비거니즘이 세상을 구할 만능 열쇠는 아니에요. 그렇게 간단하게 이룰 수 있는 목표도 아니고요. 하지만 싱어 교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요. 위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거든요. "누가 아는가? 만약 이 글이 상당한 효과를 본다면 인간에게 잔인함과 이기심을 뛰어 넘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던 모든 이들의 승리를 보게 되리라."